다음 대화를 살펴보자.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근처에 혹시 식당이 있니?”
“저쪽에 중국집이 있어요. 근데 짜장면은 원래 중국음식은 아니에요. 100미터쯤 가다가 좌회전하시면 돼요.”
답해줘서 고맙긴 하다만, 짜장면 얘기는 갑자기 왜? 좋게 보면 오지랖이고, 자칫하면 이상한 애로 보이기 십상이다. 물어본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시험도 출제자와 수험생 간의 하나의 ‘대화’이다. 그러므로 정제되고 정돈된 정보의 전달이 중요하다. 닥치는대로 아무 말이나 던진다고 대화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술 답안에서는 종종 ‘생각없이’ 대화를, 즉 답안을 쓰는 경우가 나타나곤 한다. 논술에서 좋은 답안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하면서 쓴’ 답안이다. 이러한 ‘생각’은 전반적인 내용측면 뿐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포함한다.
앞서 논술 답안을 구성할 때에는 ‘판단’과 ‘정당화’의 흐름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이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논술의 모든 문장은 ‘판단’ 아니면 ‘정당화’ 둘 중 하나인 셈이다. 그렇지 않은가? 논제를 뜯어보면 무엇을 답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이 ‘판단’에 해당한다.
그리고 논술이 주관식 답안인 이상, 내가 답한 것이 맞다는 근거를 대 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정당화’이다. 그러니 논술의 답안에 쓰여진 모든 문장들은 둘 중의 하나이다. 판단이거나 정당화이거나.
그러므로 둘 중 하나로 기능하지 못하는 문장은 논술 답안에 있을 필요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마치 잡초처럼, 답안의 논리적인 흐름을 저해하고 꼭 써야 할 공간을 잠식함으로써 점수의 획득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험생들은 한 문장 한 문장을 쓸 때에 이것이 ‘판단’에 해당하는 문장인지, 아니면 ‘정당화’를 하고 있는 문장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적어야 하고, 만약 둘 중의 하나로 작동하지 않을 문장이라면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
즉 ‘실익’이 없는 문장은 답안에 단 한 문장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학생이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하자.
“(가)는 이타적 행위가 자신에도 돌아올 미래의 이익을 기대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본다.
①흡혈박쥐는 여러 동물에게 다가가 이들이 느끼기 어려운 작은 절개창을 내어 피를 빨아들인다.
②그런데 흡혈박쥐가 굶고 있는 옆의 박쥐에게 피를 나눠주는 이타적 행동은 자기가 굶을 경우를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밑줄친 문장은 ‘판단’이다. (가)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이 학생 나름의 이해이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이에 대하여 ①, ②로 ‘정당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두 문장 모두 밑줄친 문장을 실질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①은 뭔가 이상하다. 이타적 행위도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라는 것과 ①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기 때문이다.
①은 제시문에 있던 내용인지는 몰라도, 정당화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문장은 아니다. 물론 ‘판단’도 아니다. 그러니 ‘실익이 없는 문장’이며, 이 글 서두의 대화에 비추어 보면 ‘짜장면 얘기’이다. 당연히, 이 답안에서는 솎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답안이 나오는 이유는 학생들이 분량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답안지가 축구장만큼이나 넓어보이기에, 무슨 말이든 꾸역꾸역 채워 넣어야 답안을 그런 대로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비슷해 보이는 내용이면 일단 넣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생각 없는 답안’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채점자에게 ‘이상한 애’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대화의 상대방인 채점자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 말자. 절대 좋을 일이 없을 것이다.